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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고통과 진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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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leecloud
일기 글을 쓴 지 오래됐다. 사실 일상 글이라고 해도 와이프를 제외하면 나의 일상이 정말 특별한 일이 없다. 기껏해야 회사 일 정도인데 그다지 재미있거나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일을 할 때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일을 대한다. 물론 대충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열심히 하되 너무 감정을 쏟지 않는다. 가령 내가 한 작업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 컴플레인이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그렇군요. 고치겠습니다." 하고 덤덤하게 고친다. 기간을 벗어나는 일이 주어지면 최대한 진행하되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적당히 넘어간다. 버그가 조금 있더라도 사용에 큰 문제가 없다면 고치지 않는다. 그거 고칠 시간에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더 중요한 일을 해결하는 게 나으니까.
산출물에 대해서도 적당히 거리를 둔다. 특별한 것을 만든다는 마음보다는 어디에나 있을만한 것을 하나 더 만든다는 마음이다. 특별하지 않고 소중하지도 않다. 으레 동작하는 것을 만든다. 감정을 빼놓고 일을 한다. (이러니까 쓸 말이 없다.)
이런 마음 때문에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개인 프로젝트를 오히려 시작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내 개인 프로젝트는 "일"인가 "공부"인가? "일"이라고 하면 최대한 안 하고 싶으니까 하기가 싫고, "공부"라고 하면 그다지 흥미로운 개발이 아니라서 재미가 없다. 사용자가 생기고 그들이 가치를 느끼면서 수익이 발생하면 꽤 재밌을 것 같다. 그전까지의 창작은 고통스럽다. 다 만들었을 때의 뿌듯함만이 그 고통을 견디게 하는 진통제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한강에서 작업을 했다. 이전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과 한강에서 배드민턴도 치고 수다도 떨면서 재밌게 놀았다. 마무리로 한강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에 들리게 됐다. 한강이 바로 앞에 있는 경치가 꽤 좋아서 다음에 개발 모임 할 때 여기서 하자고 얘기했었다. 그 이후로 그분이 매일 한강 카페로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나도 하루 들렸다 왔다. 흐린 날이었지만 한적해서 운치가 있었다. 그날 경험이 퍽 좋았다.
작업 환경을 바꾸러 익숙한 카페를 가는 것도 좋지만 아예 다른 장소로 가서 분위기를 환기하면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멋진 경치와 작업이라는 경험이 합쳐지면 뇌에 작업이 더 긍정적인 경험으로 남지 않을까. 이런 경험도 진통제겠지.
여행은 가기로 마음 먹은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을 가면 가는 길에는 거의 잠을 잔다. 도착한 이후부터 여행! 이라고 생각하고 사진을 찍곤 한다. 어릴 때는 아닐 수도 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가는 길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잊었었나. 소풍은 소풍 가기로 한 순간부터 그 전날까지 모두 소풍인 것인데. 작업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에 도달하기 전부터 그 모든 과정이 성취고 즐거움이다. 즐겨야지.